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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격생이 알려주는 진짜 합격 수기

한국어교육능력검정시험 합격수기(제11회)

자격명 :
한국어교육능력검정시험
구분 :
합격수기
작성자 :
오*익

새로운 길

오 승 익

♣‘우연’을 잡다 - 한국어교원양성과정 등록

‘한국어능력시험’, ‘한국어교육능력시험’. ‘한국어교원능력시험’. 이름부터가 헷갈렸다. ‘한국어교육능력검정시험’에 대해 제대로 인지하기까지는 한참이 걸렸다. 합격하고 난 후의 일이지만 자격증 명칭은 또 ‘한국어교원자격증’이었다.

이 시험을 준비하게 된 건 정말로 우연이었다. 2016년 1월, 36년간의 공직생활을 사실상 마감하고 J발전연구원 연구관으로 발령이 났다. 이는 공직을 마치고 집으로 가기 전 잠시 쉬었다 가는 사실상의 대기 장소인 것이다.

처음 두 달간은 책이나 보며 시간을 보냈다. 공직 말년에 국회 파견근무와 장기교육, 의회사무처 등을 근무하면서 시간 틈틈이 책 보는 것이 일상이 되어 있었지만, 메모해 둔 컴퓨터 목록에는 많은 책들이 나와의 만남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수많은 여정의 시간들을 어떻게 보낼까 고민을 하던 2월 무렵, J대학교 부설 평생교육원(이하 ‘평생교육원’이라 함) 한국어교원양성과정 모집광고를 우연히 접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평생교육원의 수필창작반에 등록하여 수강을 할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광고를 보고는 두 가지를 다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그러다, 앞으로 남는 게 시간인데 한 가지씩 차근차근 해 나가자는 생각에 수필창작반은 뒤로 미루고 한국어교원양성과정엘 먼저 등록 하였다. 이제와 생각하니, 두 가지를 한꺼번에 했더라면 하나도 못 건지고 낭패만 보았을 것이다. 자만심이 넘쳤던 것이다.

2016년 3월 5일 토요일 오후 2시 J대학교 한국어교원양성과정(제9기)에 입교를 하고 매주 2회(화, 목) 수강을 하게 되었다. 7월 12일까지 총 122시간으로 편성되었고, 그 중 120시간 이상을 이수하여야 한국어교육능력검정시험 응시자격이 주어졌다. 7월 16일은 수강생을 대상으로 수료시험을 보았다. 수강료는 95만원. 교육방법은 출석강의 102시간과 한국어 교육실습 20시간으로 구성되었다. 교과목은 한국어학, 일반언어학 및 응용언어학, 외국어로서의 한국어교육론, 한국문화 등 4과목이다. 교재로는 「한국어교육의 이론과 실제 1」과 「한국어교육의 이론과 실제 2」등 두 권이 주어졌고, 「한국어교육능력검정시험 기출문제」(4회~10회)도 배부되었다. 실습은 J대학교 국제교류회관에서 외국인 연수학생들을 대상으로 한국인 강사가 강의하는 한국어 강의를 참관하고, 조를 편성하여 교수안 발표자를 자체에서 뽑은 후 공동으로 교수안을 작성하여 한국어 모의수업을 진행하는 방식으로 실시되었다. 전체 122시간 중 20시간이 배정되었는데 시험에 최종 합격을 하고 강의를 나갔을 때를 대비한 매우 실용적인 과정이었다. 수강생은 당초 40명이 목표였으나 지원자가 저조하여 22명에 불과하였다. 지난해까지는 수강생이 많았었는데 올해 대폭 줄었다고 한다. 내가 수강신청을 할 때만 해도 지원자가 20명을 넘지 않으면 폐쇄할 계획이라고 하던데 가까스로 개설을 하게 된 것이다.

대부분 수강생들이 한국어교원양성과정 강좌에 대해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을 한다. 나 또한 그랬었다. 태어나면서부터 한국어를 사용해 온 원어민이자, 성장과정에서 배웠던 과거의 기억들을 다시 되살려 낸다면 양성과정 수료와 한국어교육능력검정시험(필기)을 치르는 데는 큰 무리가 없으리라 과신했던 것이다.

♣ 36년만의‘시험’공부

어쨌든 ‘한국어’ 공부는 시작되었다. 일주일에 두 번 나가는 한국어 수강은 번거롭기는 해도 늘 경황없던 공직과 비교하면 한량이나 다름없었다. 3~4월은 수업도 듣고 틈틈이 책을 보다보니 어느새 훌쩍 지나가버렸다. 그러는 사이 수강과목의 난해함과 부담감은 차츰 신경계를 압박해오고 본 시험까지는 불과 넉 달 정도밖에 남지 않고 있었다. 이러다간 안 되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메우기 시작했다.

우선 수업초기 안내 받은 참고서적들을 구입하고, 줄거리를 파악하는 차원에서 한 번씩 쭉 읽어보기로 하였다.「외국어로서의 한국어교육학개론」(2015)과「한국어교육능력검정시험 30일 안에 다잡기」(2016)를 차례로 읽고 나니 대체적인 개념은 잡히면서도 매우 혼란스러웠다. 어떻게 중심을 잡아야 할 지 정리가 잘 되지 않았다. 평생교육원에서 나눠준 「한국어교육의 이론과 실제 1」과 「한국어교육의 이론과 실제 2」도 강의진도에 관계없이 한차례씩 속독을 해 보았다.

그러고 나서 핵심사항들에 대한 정리 작업에 들어갔다. 시험에 효율적으로 대비할 수 있도록 나의 공부 방식에 맞게 요약하고 엮어서 재편집을 하였다. 「한국어교육능력검정시험1240제」(2013, 서경숙, 도서출판 박이정),「한국어교육능력검정시험 5년간 기출문제해설」(2016, 안혜진, 시대고시기획刊)집도 추가 구입하여 모두 한차례씩 풀어본 후 핵심사항들을 별도 정리했다. 이렇게 하여 모두 6권의 핵심 요약서를 만들어 냈다. 눈은 찜찜하고 몸은 고단하였다. 생각보다 작업 시간이 많이 걸리는 바람에 시험 날짜는 코앞에 다가오고 있었다. 이 많은 분량을 언제 다 소화해 낼 수 있을까. 천근만근 걱정이 머릿속을 맴돌곤 했다. 더구나 지난해 시험(2015년)이 많이 쉬웠던 터라 올해(2016년)는 한결 어려움이 예상되고 있다. 이렇게 몸과 마음만 고생하다 허무하게 끝나버리고 말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들기도 하였다.

수강을 시작하기 전 한국어(‘국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이다.)에 관해 그나마 들어보았던 용어로는 ‘구개음화’, ‘두음법칙’, ‘모음조화’, ‘모음’과 ‘자음’ 정도였다. 수업초기 어느 강사가 ‘유음 ㄹ’을 언급 하자 이를 잘 이해하지 못하여 ″예? ‘리을(ㄹ)’을 유음이라고 합니까?〃라고 질문했던 기억이 새롭다. 그야말로 쓴 웃음이 나는 왕초보였던 셈. 시험이 다 끝나고 한국어교원자격증을 손에 쥔 지금의 내가 보아도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요약정리가 다 끝나자 이에 대한 학습계획을 세웠다. 한 권을 공부하는데 3~4일 정도로 잡았다. 36년 전 공무원시험(4급乙, 지금의 7급)을 준비하면서 밤을 새웠던 기억을 떠올리면서 수 십 년 만에 다시 머리 싸매는 공부를 시작했다. 요약분을 일일이 연습지에 낙서하듯 쓰고 외우며 머릿속에 저장하는 연습을 했다. 하지만 환갑에 이른 나의 녹슨 머리는 기억의 한계를 절절이 보여주었다. 어렵사리 머릿속에 집어넣고 나면 어느 순간 수증기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저장시간이 오래 가지를 않았다. 총열을 닦고 정비하듯 계속하여 녹슨 머리를 닦아내지 않으면 안 되었다.

여름은 서서히 다가오고 평생교육원 수업도 끝나가는 7월, 어려움 속에서도 한국어에 대한 지식들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필기시험(8월 27일)에 대비하여 평생교육원 동기 6명이 스터디 그룹을 구성하기로 했다. 스터디 날짜는 매주 금요일 저녁 6시부터. 장소는 나의 개인 사무실로 정했다. 그들이 새로 지은 나의 사무실을 찾은 첫 공식 손님이 되었다. 스터디 방법은 각자가 준비해온 정리 자료들을 서로에게 나눠주고 정리한 사람이 설명하거나, 평소 기출문제 등을 풀어보면서 이해가 어려운 부분들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이를 통해 혼자만 알고 있던 중요내용들을 함께 공유하고, 애매한 부분들은 스터디 과정을 통하여 머릿속에 뚜렷이 각인할 수 있게 되었다. 스터디 멤버들 간에 어려움을 함께 나누고 격려하는 소중한 기회도 되었다. 스터디는 모두 5차례 진행했다.

평생교육원 본 과정 수료 후, 희망자들을 대상으로 필기시험(8월 27일)에 대비한 특강도 실시되었다. 강사는 J대학교 국제교류센터에서 외국인 학생들을 가르치는 K 선생이다. 주로 시험에 대비한 준비요령과 한국어 문법 등을 중심으로 7월 23일부터 8월 20일 사이 일주일에 1회(매주 토요일 오후) 진행되었다. 수강료는 10만원. 그는 원래 국어교사 출신으로 한국어 문법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어 수험생들이 시험에 실질적으로 대비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 좌절과 극복 - 목표를 세우고

폭염이 한 달여 동안 계속되었다. 퇴직에 대비해 마련한 나의 사무실은 푹푹 찌는 폭염으로 오후가 되면 에어컨을 가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함께하는 스터디도 있었지만, 대부분 홀로 고군분투. 집에서 새벽 5시쯤에 일어나 8시까지 아침 공부를 하고, 이어 식사를 한 다음 9시 전후에 사무실 도착, 오전 공부를 시작하였다. 다시 점심을 하고, 오후 1시부터 중간 중간 쉬어가며 저녁 8시까지 공부를 한 후 집으로 향했다. 저녁을 먹곤 한 시간 정도 더했다. 그러면 하루 13~14시간 공부하는 셈이다. 각종 행사참석이나 지인들과의 만남 등은 최대한 줄이려고 노력했다. 개인적인 취미 생활(컴퓨터 바둑, 수목원 걷기, 주말 산행 등)도 거의 접었다. 하지만, 경조사는 열심히 돌아다녔다. 주말마다 어머님(94세)이 계신 시골집을 찾아 살피고, 병원 진료(물리치료)를 다니는 일도 5년째 이어져오는 일상으로 한국어 공부를 한답시고 물리칠 수는 없는 일이었다.

7월 말이 다가오면서 시험에 대비한 세부적인 학습계획표를 짰다. 중요 행사가 미리 계획되어 있거나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경우에는 여기에서 과감히 빼고 실천 가능한 계획표를 짰다. 그리곤 날짜별, 기한별로 공부할 과목과 문제집 등을 정해 한 달 동안 체계적인 공부에 돌입했다. 학습계획표를 벽면에 붙여 놓고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는지 늘 살폈다.

하지만 실천에는 어려움이 따랐다. 외로움·지루함·피곤함·회의감·두려움이 종종 엄습해 왔다. 시험에 합격해 보았자 활용도가 낮다는 말이 간간이 들려올 때면 더 큰 회의감이 몰려들었다. 하지만, 마음을 다시 고추 세우며 다짐에 다짐을 하곤 했다. 내가 한국어교육능력검정시험을 준비하는 것은 첫째, 한국어교원 자격증을 취득한 후 초급 중국어 자격과 과거 교편경험을 살려 떳떳이 사회에 재능기부를 하기 위함이고, 둘째 퇴직 후 집안에만 박혀 소위 '삼식이‘와 ‘방콕’생활을 하는 모습에서 스스로 탈출하기 위함이며, 셋째 환갑의 나이에도 고능력 시험에 떳떳이 합격함으로써 자신감을 얻어내기 위함이었다.

허물어지려는 마음을 다독이며 연습지에 무수히 쓰고 또 쓰는 원시적 기법으로 머릿속을 채워가기 시작했다. 이틀에 한 개 꼴로 플러스펜이 사라져 갔다. 새카맣게 쓰인 연습지들이 쓰레기통을 채우고 있는 모습을 보며 뿌듯한 희열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핵심요약서「한국어교육의 이론과 실제 「1」과「2」4회,「한국어교육능력검정시험 30일 안에 다잡기」3회,「한국어교육능력검정시험 1240제」3회,「한국어교육능력검정시험 5년간 기출문제 해설(10~6회)」4회,「한국문화」2회(스터디용), 「주요핵심정리」3회독을 실시하였다. 요약서를 공부하고 나서 바로 문제집을 집중적으로 풀었다. 반복적으로 문제를 푸는데도 불구하고 ‘처음 보는’ 문제가 한 둘이 아니었다. 나이와 머리의 반비례를 실감할 수 있었다.

기본교재인「한국어교육의 이론과 실제 1」및 「2」각 2회,「외국어로서의 한국어교육학개론」1회, 한국어교육능력검정시험 30일 안에 다잡기」5회를 탐독하고,「한국어교육능력검정시험 1240제」4회,「한국어교육능력검정시험 5년간 기출문제 해설(10~6회)」4회, 그리고 J대 평생교육원에서 수강초기 배부해준 「한국어교육능력검정시험 기출문제(4~10회)」중 4~5회 부분(6~10회 부분은 ‘5년간 기출문제’집에 수록됨)을 1회 풀었다. 문제집을 풀 때 중요 문제에는 O표를 하고, 1회 틀린 문제는 브이(√)체크를, 두 번 틀린 경우에는 더블브이(√√)를 체크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3회째부터는 O표 문제와 브이가 1회 이상 체크된 문제만 풀었다. 그럼에도 다시 틀린 경우에는 트리플브이(√√√)로 표시했음은 물론이다. 트리플브이를 체크할 때까지도 ‘처음처럼’ 마주치는 문제가 속출하곤 했다. 갑갑함이 마음을 짓눌러대었다. 특히, 잊지 말아야할 포인트 문제와 해설에는 별표(☆)를 해 두었다. 그러다보니 책 속에 웬 별들이 무수히 떠다니게 되었다. 꿈과 희망의 별이 아니라 고뇌와 고통의 별들이었다.

행간 곳곳에는 파랑·초록·빨강·검정색의 줄을 긋거나 형광펜 등으로 표시를 하며 식별이 용이하도록 하였다. 같은 해설과 문제가 같은 책의 다른 쪽 또는 다른 문제집에서 발견될 때면 반드시 연관된 쪽 수 표시를 하여 찾아보기 쉽도록 하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문제집의 겉표지는 어느새 너덜거리기 시작했다. 그쯤에 문제집의 점수도 조금씩 올라가기 시작했다철옹성이 조금씩 허물어지기 시작하고 자신감도 솟아나고 있었다.

「한국어교육능력시험 5년간 기출문제해설」집은 총864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으로 한 번 풀어보는데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처음 문제를 풀었을 때(6월 13일)는 전과목 총점이 164.7점에 불과했다. 이는 합격선 180점에서 크게 미달한 점수다. 출제 기수에서 보았을 때 10회차(2015년) 기출문제에서 가장 높은 점수(178.5)가 나왔다. 이 역시도 합격선에는 미달되는 점수지만 역대 기출문제 중 10회차가 가장 쉬웠음을 말해준다. 두 번째로 풀었을 때(8월 2일)는 총점이 196.8점이 나왔다. 가까스로 합격선을 넘었다. 이때도 10회 출제문제의 경우 216점으로 가장 높은 점수가 나왔다. 3회째 문제풀이를 한 결과(8월 16일) 드디어 236.1점으로 가장 높고 안정적인 점수가 나왔다. 역시 10회째 기출문제의 경우 253.5점으로 가장 높다. 하지만 기출문제의 점수가 높다고 실제 시험에서 그대로 나오는 것은 아니다. 기출문제들을 비교해 보아도 분야와 유형은 비슷하지만 같은 문제가 그대로 출제되는 경우는 한 번도 없다. 물론 그래서도 안 되었다. 시험(8월 27일)전 마지막으로 별표(☆)와 중요부분(O표), 브이체크부분(√)을 중심으로 최종 점검을 했다(8월 25일).

「한국어교육능력 검정시험 1240제」의 경우에는 ‘실력키우기’ 부분과 ‘기출문제’ 부분으로 편집이 되어 있는데, 1차 풀이(5월 17일) 당시에는 백분율 기준 ‘실력키우기’가 62.1점, ‘기출문제’가 61.7점으로 가까스로 합격선 60점을 넘었고, 2차 풀이(7월 22일)에서는 ‘실력키우기’가 72.7점, ‘기출문제’ 68.9점이 나왔다. 그리고 3차 풀이(8월 12일)에서는 ‘실력키우기’ 81.4점, ‘기출문제’ 82.05점이 나왔다. 문제를 풀수록 점수는 올라가고 있었지만 여전히 생소한 문제들을 볼 때마다 밀려오는 자괴감은 어쩔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중요부분과 틀린 부분들을 중심으로 한 번 더 문제를 풀어 보았다.(8월 23일)

이상의 두 문제집을 풀고 나서 실제 시험에서의 과목별 최저 득점 마지노선을 정했다. 한국어학 67.5점(60문항 중 45문항), 일반 및 응용언어학 19.5점(20문항 중 13문항), 한국문화 19.5점(20문항 중 13문항),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교육론 90점(92문항 중 60문항) 등 총점을 196.5점으로 정했다.

결과는 이에 한참 못 미치는 점수로 합격을 했지만, 한국문화 과목만 마지노선 이상의 점수를 얻고 나머지는 전부 이에 미달하고 말았다.

♣ 황당했던 필기시험

마침내 시험날짜가 되었다. 8월 27일이다. 지난 3월 평생교육원 입교 당시만 하더라도 아주 먼 날이라 생각했는데 어느새 그날이 온 것이다. 장소는 한국산업인력공단 J지사. 응시시자는 모두 49명이었다. 두 교시로 나누어 실시되었는데 첫 교시는 「한국어학」, 「일반언어학 및 응용언어학」 등 두 과목을 합해 80문제에 100분간, 두 번째 교시는「한국문화」,「외국어로서의 한국어교육론」등 두 과목을 합해 113문제(객관식 112문제, 마지막 1문제는 12점짜리 교안작성 문제)에 150분간 실시되었다.

긴장하면서 맞이한 첫 교시 시험시간.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어려운 문제는 뒤로 미루고 쉬운 문제부터 풀어나갔다. 사실은 쉬운 문제가 하나도 없었다. 시간은 똑딱똑딱 지나는데 답이 얼른 얼른 보이지를 않았다. 당황이 되었다. 문제당 1.25분씩 주어졌는데 답안을 고르는 사이 어느새 시간이 휙 지나가버렸다. 시간이 거의 다되고 보니, 뒤로 미뤄놨던 문제가 10여개나 되었다. 무턱대고 아무 답이나 옮겨 놨다. 10문제 중 2개가 맞았다. 이건 완전 엉터리로 운이 좋아 맞힌 것이다. 1교시 시험이 끝난 후 점심시간, 여기저기서 한숨 소리가 튀어 나왔다. 나 자신도 절망적이었다. 지금까지 나름 열심히 했는데, 흥분된 얼굴은 상기되어 있었고, 2교시 시험을 치러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는 회의감이 밀려들었다. 지난해에 비해 시험이 어려울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너무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들 불평이었다. 중간에 먹는 토막 점심은 제 맛을 느낄 수가 없었다. 그래도 이왕 왔으니 2교시 시험까지 치러보자며 실망반기대반으로 오후 시험을 치르게 되었다.

2교시 시험은 150분이 소요되었다. 문제는 역시 어려웠고, 이것저것 생각하고 고민할 겨를 없이 일사천리로 풀어나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정답이다 싶으면 그냥 찍고 넘어갔다. 답안지에 체크하고 문제지에도 동시에 동그라미 표시를 하였다. 문제지는 수험생이 가져가도록 허용되었다. 그렇게 문제를 풀다보니 시간이 거의 다되었다. 그 때야 교수안 작성에 들어갔다. 교수안 양식을 그리고 제시, 연습단계에 대한 제목과 약간의 설명을 붙이니 마감 종소리가 울렸다. 성급한 김에 제대로 된 글씨로 정성 드려 쓸 겨를도 없었다. 그래도 이정도면 12점 중 최소 1~2점이라도 주겠지. 당락을 결정짓는 커트라인 선상에 위치할 경우 1~2점은 생사를 가르는 큰 점수였다. 객관식 문항 당 점수는 1.5점이다. 교수안 점수 12점을 포함하여 모두 300점 만점에 180점 이상을 얻어야 합격이다. 이는 백분율로 계산할 경우 과락(40점미만) 없이 60점 이상 얻어야 합격하는 것이다.

♣ 절망 뒤의 환희

시험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모든 것이 절망적이었다. 노령 수험생을 맞이한 아내와 아들이 우선 궁금해서 물어왔다. 시험 어떻게 됐느냐고. ‘다 끝났다.’라고 말해줬다. 더 이상 합격을 기대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였다. 시험이 왜 그리 어려운지. 지난해는 너무 쉽게 출제되더니만 올해는 정반대. 난이도가 중심 없이 널뛰기를 하는데 화가 치밀었다. 자신도 모르게 불평이 튀어 나왔다. 희망은 물 건너간 것이나 다름없었다.

저녁 6시에 한국산업인력공단 홈페이지에 가답안이 공개될 예정이었다. 기대는 내려놓았지만, 그래도 한 번 체크를 해보기로 하고 시간이 되자 문제지에 체크된 답안과 공개된 가답안을 대조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예상외로 동그라미가 많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마지막 체크를 하는 순간 정말로 믿기 어려운 현상이 나타났다. 잠정 체크결과는 놀랍게도 총300점 만점에 184.5점(백분율로 환산하여 61.5점). 네 문제만 틀렸으면 영락없이 불합격인 것이다. 교수안을 제외한 192문제 중 기수(基數) 배열 순서로 123문제를 맞추게 된 것도 흥미롭다. 나름 최선을 다 한 결과 가까스로 턱걸이라도 했으니 이것도 ‘우주의 기운’이 모아졌더란 말인가? 제출된 답안지에 제대로 체크만 됐다면 합격은 분명했다. 나는 정말 행운아라 할 만 했다. 망망대해를 표류하다 튜브 하나를 건진 셈!

필기시험 날 아침 시험장으로 가는 길. 연속적으로 3개의 신호등을 지날 때였다. 신호등이 파란색에서 황색으로 바뀌려는 찰나마다 가까스로 무사히 통과했던 기억이 새삼 떠오르며 그게 나의 시험결과와 어떤 연관이라도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되었다. 식구들과 번갈아 가며 하이파이브를 했다. 기쁘고 흥분되었다. 마치 로또 복권에 당첨된 것처럼. 20대는 물론, 대부분 30~40대의 젊은 청춘들과 함께 치른 시험에서 당당히 합격할 수 있게 된 뿌듯함이 나의 기분을 더 급상승시켰다. 환갑이 지난 내 나이에도 ‘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 ‘새신을 신고’ 창공을 날아보고 싶은 심정.

♣ 다시 면접 모드로

다음날, 여름 한철동안 특강을 했던 K선생에게 전화를 했다. 이번 시험의 난이도 등을 설명하고 면접에 대비하여 어떻게 하면 좋은지를 물었다.「2차 면접시험 하루만에 다잡기」(2016, 시대고시기획刊)를 추천해 주었다. 당장 시내 서점으로 달려가 책을 샀다. 그리고 책 내용들을 중심으로 나의 학습방식에 맞게 요약정리에 들어갔다. 모두 30쪽에 101제(題)가 나왔다. 그리고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교육학 개론」에서도 중요하다 싶은 8쪽·26제(題)을 추출하여 정리하였다. 필기시험에 대비하여 핵심정리한 부분 중에서도 면접 시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들을 다시 추출하여 편집하였다.(40쪽·81題)

면접에 대비한 실력 쌓기가 어느 정도 됐다 싶은 10월 초에 이르자 위 두 권의 원본 서적에서 다시 보충 작업에 들어갔다. 이에 17쪽·51題를 추가 작성하였다. 이렇게 해서 면접대비 정리자료가 총 95쪽·259題에 이르렀다. 이 중에는 같은 내용과 유사내용이 중복되는 경우도 상당수 있었다. 내용이 숙지가 안 된 상태에서 작성하다보니 중복여부를 발견하지 못하고, 공부하는 과정에서 발견하게 된 것이다.

공부는 정리된 자료를 바탕으로 연습지에 써가며 암기하는 방식으로 진행하였다. 면접시험 때까지 모두 13회를 반복하였는데, 당초에는 4~5회 정도 반복 할 것으로 계획하였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반복 속도가 빨라지고, 횟수 또한 많아졌다. 플러스펜은 여전히 이틀에 하나 정도, 앞뒤 새카맣게 쓰고 난 연습지는 하루 평균 6~7장 내외가 사라져갔다. 아마도 앞으로 이러한 고역은 더 이상 없으리라. 10월 23일 면접을 열흘 정도 앞두고는 쓰면서 외우는 대신 그냥 중얼중얼 입으로 말하면서 요약자료의 페이지를 넘겼다.

제일 기억하기 어려웠던 부분은 한국어 문법, 그 중에서도 어미와 조사의 용법 등에 관한 것이었다. 눈으로 보고 이해는 할 수 있어도 입으로 설명을 하려고 하면 제대로 되지 않아 조리 있는 답변을 뽑아내기가 퍽 어려웠다. 시험준비를 하던 초기에는 웬 자격시험을 필기로 끝내지 않고 면접까지 하는가 하는 원망과 의문이 많이 들었다. 하지만 필기를 끝내고 면접을 준비하면서는 방대했던 필기시험 분야들 중 한국어 문법, 교수법 등 필요한 부분만을 집중적으로 학습할 수 있어 이 분야의 이해력을 높이는 데 매우 유익한 기회가 되었다. 다 끝나고 나니 역시 면접도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 1차관문 통과, ‘필기합격’

10월 5일 필기시험결과가 Q-net홈페이지를 통해 공식 발표되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결과를 보니 총점 184.5점을 얻어 합격이었다. 예상점수와 맞아 떨어졌을 뿐 혹시 추가되지나 않을까 내심 기대했던 교수안 작성결과는 전혀 반영이 안 되었다. 그런데 과목별 점수에 일부 변화가 있었다. 「한국문화」가 당초 15문항 예상에서 16문항을 맞춘 것으로 나타나 22.5점에서 24점으로 점수가 올라간 대신,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교육론」은 당초 58문항에서 하나 적은 57문항을 맞춘 것으로 나타나 점수도 87점에서 85.5점으로 내려앉았다. 이는「한국문화」의 한 문항의 정답을 두 개로 처리한 결과였고,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교육론」에서는 시험지 체크와 달리 답안지 체크를 잘못하는 바람에 점수가 낮아지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래도 과목별로 하나씩 주고받을 수 있어서 총점은 가채점 당시의 예상점수(184.5점)와 같아진 것이다.

새로운 사실도 발견했다. 이번 시험은 2006년 이후 해마다 치러져 올해 11번째 맞는 시험이었는데, 지난 2010년 5회 차 시험에 이어 역대 두 번째 어려운 시험이었다. 지난해(2015년)는 너무 쉽게 출제되어 필기 합격률이 61.39%에 이르렀다. 평년의 30%대 합격률에 비하면 배 이상이었고, 실제 문제를 풀어보니 쉬운 점을 확연히 확인할 수 있었다. 2016년도는 가장 많이 응시하여(3,101명) 두 번째로 낮은 합격률(23.25%)를 기록하였다(최저 합격률 : 2010년도 5회 22.89%).

♣ 새로 얻은 교훈,‘건강이 최고’

면접에 대비한 공부는 완전히 고독과의 싸움이었다. 스터디 할 멤버도 없었다. 두 달이란 기간이 참으로 길고 지루하기만 했다. ‘떨어지면 어떻게 하나’ 하는 조바심과 동시에 합격을 하든 말든 면접날이 하루빨리 와버렸으면 하는 심정도 들었다. 정리 자료를 한 장씩 넘길 때마다 언제면 이 지겨운 페이지를 빨리 익혀 더 이상 쳐다보지 않아도 될 행복한(?) 날이 올 수 있을까하는 상념에 빠져들곤 했다. 그럴 때마다 가끔씩 개인 사무실의 옥상정원으로 나가 ‘憑高眺遠’(빙고조원)하며 머리를 식히거나 때때로 찾아오는 모임과 행사에도 참석하며 고독감을 풀어내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 앉은뱅이 탁자에 책을 펴고 잠시 공부를 하다 일어서는데 허리 밑 소위 꽁지 뼈 위에서 움찔하는 고통이 느껴졌다. 나중에 시내 H병원에서 MRI(자기공명영상) 검사결과 허리디스크였다(10월 7일). 허리 5번 척추와 그 아래 천추(엉치 척추뼈 : 허리뼈 아래쪽에 있는 다섯 개의 뼈) 사이에 디스크 수액이 삐죽하게 나온 것이다.

처음에는 시내 K신경외과엘 갔는데(9월 21일), 물리치료와 전기침을 맞고 나오는 순간 통증이 허벅지 밑으로 내려가면서 극심한 고통이 밀려와 제대로 걸을 수가 없었다. 치료를 하러 갔다가 병을 더 얻고 나온 셈이었다. 그날(9월 21일) 오후 바로 시외버스터미널 앞에 있는 N의원을 찾아 증세를 설명하고 1주일 정도 주사 치료를 받았다. 그러면서 많이 나아지기는 했으나 오른쪽 종아리 밑으로 내려간 통증과 종아리 뒤쪽으로부터 발등까지 이어지는 감각 마비 증세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다. 또다시 H병원을 찾아가 증세를 설명했더니 우선 MRI 검사를 하라고 했다. 45만원을 들여 MRI를 찍었더니 허리디스크라며 당장 수술을 권하는 것이었다. 우선 약부터 먹어보면서 수술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하고는 병원문을 나섰다. 막막했다. 그 후 이주일 분 어치 약을 추가로 복용하니 좀 더 회복이 되기는 했으나 좀체 완치가 안 되었다. 면접(10월 23일)이 지나 또 다른 K신경외과를 찾았다(10월 26일). 이 K신경외과에서는 아주 고통스런 주사를 놓았다. 주사 시 절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척추에 있는 신경에 바로 주사약을 투여했기 때문이다. 의사는 1년 정도의 여유를 두고 꾸준히 치료를 한 후 그래도 안 나으면 수술을 해볼 것을 권했다. 이렇게 하여 최소 1년 동안은 병원 신세를 져야할 판국에 빠지고 말았다. 병신생(1956년)이 병신년(2016년)에 병신이 다 되어버린 느낌이다. 얻은 것은 자긍심이었지만 잃은 것은 건강이었다.

핸드폰의 만보계를 보면 1일 평균 걸음 수가 3월 3439보, 4월 4561보, 5월 6010보, 6월 4594보, 7월 2043보, 8월 2343보, 9월 2933보, 10월 7277보로 필기시험이 막바지에 다다른 7~8월 보행 수가 아주 정체(2000보대)되었음을 알 수 있다. 면접시험에 대비하여 총력을 기울이던 9월 역시 2000보대를 유지했다. 10월부터는 다소 여유와 자신이 생겨 절뚝거리는 다리를 끌며 본격적인 걷기 운동에 돌입했다. 면접 준비 기간이었지만 날마다 수목원을 꾸준히 걸었고 면접이 끝난 후에는 관광 등을 돌아보느라 보행수가 대폭 상승하였다. 11월부터는 건강제일주의로 전환했다. 11월 1일부터 헬스클럽에 등록을 하여 본격적으로 몸만들기에 들어갔다. 이번을 계기로 앞으로도 내 인생에서 건강을 챙기는 일은 언제나 1순위, 공부를 비롯한 여타 활동은 모두 2순위 밖으로 두기로 했다. 건강을 읽으면 천하를 잃는다는 것을 이번 기회를 통해 몸소 체험한 것이다.

♣ 면접장에서 생긴일

필기시험 합격자 발표(10월 5일) 후 5일이 지난 10월 10일 면접시험 날짜와 장소가 공고되었다. 원래 면접일은 10월 22일(토)부터 23일(일)까지인데 나는 23일 오후 2시, 서울의 용산공업고등학교로 정해졌다. 면접 전날 상경하여 위치를 사전에 확인해 두었다. 요즘은 인터넷도 발달하고 교통편도 편해서 얼마든지 당일 일찍 출발하여 찾아 가도 되지만 때마침 지하철 파업으로 뒤숭숭 한데다 정확한 위치 확인도 없이 당일 갔다가 어떤 돌발 변수라도 발생할지 모른다는 생각에서 사전 확인을 한 것이다. 용산공고는 다행이 용산역에서 걸어서 10분 정도의 거리에 있었다.

면접날이 되었다. ‘그래도 다시 한 번’하는 생각에 오전에 최종 점검을 했다. N씨가 일찍 면접장에 도착했다는 연락이 와서 나도 면접 도착 마감시간인 오후 2시 보다 한 시간 일찍 현장에 도착했다. 가서 보니 벌써 여럿이 와 있었고 3개의 교실에 설치된 수험생 대기실에서 마지막 공부들을 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수험생들이 내가 구입해서 공부했던 청색 표지의 「2차 면접시험 하루만에 다잡기」 책들을 보고 있었다. 나이가 들어 보이는 수험생도 생각보다 많았다. 면접 수험장에 도착하고 보니 뜻밖에 J대 평생교육원 수강 동기생 두 명(K, 또 다른 K)도 와 있었다. 서로들 필기에 합격한 줄을 모르고 면접장에서 우연히 만난 것이다. 무척이나 반가웠다. 그리고 2015년도 하반기 J대 평생교육원 수강생 중 올해 필기에 함께 합격한 세 명의 응시자도 와 있었다.

면접은 정확히 오후 2시 반부터 시작되었고, 관계자로부터 사전 수험생의 주의사항과 면접 요령 등 몇 가지 설명이 있었다. 1인당 면접시간은 10분 이하. 면접관은 세 사람이라고 했다. 모두가 초조하고 불안한 심정들. 도대체 어떤 질문이 나올까. 제대로 답변은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온통 머릿속을 맴돌았다. 무작위 추첨에 의해 면접 순서가 정해졌다. 그리고 나는 두 번째로 정해졌다. 이윽고 차례가 왔고 면접실로 들어섰다. 문을 열며 면접관들에게 먼저 인사를 드리고 면접관 바로 앞의 의자에 앉았다. 면접관은 사전 설명대로 세 분(남1, 여2)이었다. 어떤 분이 면접관으로 올까? 국어 전공 교수 아니면, 중등 국어 교사쯤 되겠지. 아니면 국어 연구기관의 연구관 등···. 면접관들은 대체로 40~50대(초반) 쯤으로 젊어 보였다.

자리에 앉자마자 앉은 순서대로 남자 면접관이 실실 웃으며 먼저 질문을 던졌다.(이하 질문과 답변은 핵심 요지만 적은 것임)

(질문) : 한국어 공부를 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이 무엇입니까?

(답변) : 문법 부분이 가장 어려웠습니다.

(질문) : 그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부분은?

(답변) : 불규칙과 탈락 부분이었습니다.

그러자 가운데 앉은 여자 면접관으로 질문 순서가 넘어갔다. 그 순간 남자면접관이 나에게 물어본 게 실제 질문이었구나 하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남자 면접관의 질문은 수험생의 긴장도를 풀어주는 차원에서 그냥 던지는 여담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두 번째 여자 면접관.

(질문) : 피동과 사동을 구별해서 설명해 보세요.

(답변) : 피동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시킴을 당하는 것이고, 사동은 다른 사람을 시키는 것입니다. 피동과 사동 어미의 경우 ‘이,히,기,리,우,구,추’의 어미 중 ‘이,히,기,리’가 같이 쓰이는 데 그럴 경우 목적어의 유무에 따라 피동사인지 사동사인지 구별을 하게 됩니다.

(질문) : 그럼 ‘먹히다’는 피동사입니까 사동사입니까?

(답변) : 피동사로도 볼 수 있고, 사동사로도 볼 수 있습니다.

(질문) : 예? 사동사로도 볼 수 있다고요?

(답변) : (잠시 생각한 후에) 아닙니다. 피동사입니다.

(질문) : ‘먹히다’를 이용하여 예시 문장을 만들어 보세요.

(답변) : (순간 당황하여 얼른 생각이 떠오르질 않는다. ‘토끼가 호랑이에게 잡혀 먹힌다.’와 같은 생각이 왜 안 났을까?) ‘나는 밥을 안 먹으려고 했는데 먹힌다.’ (순간 면접관 모두가 한바탕 웃음바다가 돼버렸다. 억지 문장에 절로 웃음이 나와 버린 것이다. 나도 웃고 말았다.)

세 번째 여자 면접관 순서다.

(질문) : ‘하늘은 높고 물은 맑다.’에서 ‘-고’의 용법에 대해 말해 보세요.

(답변) : 여기에서의 ‘-고’는 선행절과 후행절이 서로 (내용상)상관이 없을 경우 쓰이는 어미입니다. (틀린 답은 아니나 어벌쩡하게 답하고 말았다. ‘선행절과 후행절을 병렬관계로 이어주는 연결어미’가 정확한 답인 것을 얼른 생각이 떠오르질 않은 것이다. 후회가 되었다.)

(질문) : ‘버스를 타고 가다.’에서 ‘-고’의 용법에 대해 말해 보세요.

(답변) : 수단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질문) : 수단을 나타낸다고요?

(답변) : 예

그 후 같은 질문이 더 이어졌으나, 다른 뾰족한 답이 생각이 나지 않아 ‘그렇다’고만 답변했다. 그러자 면접관 중 한 명이 ‘됐습니다. 나가십시오.’라고 말했다. 면접장을 나와 보관해 두었던 핸드폰을 찾고 밖으로 나오자 적이 당황이 되었다. 얼마 후 허전한 자유가 찾아왔다. 시간이 갈수록 ‘이러다 떨어지는 것 아닌가?’하는 불안감이 늘 마음속에 일렁거렸다.

♣ 기대 반 걱정 반

고향에서 간 응시자들도 면접을 마치고 속속 교실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면접 소감을 서로 나눠보니 질문들이 거의 유사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대부분 한 문제씩은 제대로 답변을 못했다는 것이다. 더욱이 말하기 문법 교수법인 ‘TTT’에 대해 설명해 보라는 질문에 답변을 못했다는 응시자도 있었다. 그 질문이 나에게 주어졌더라면 자신 있게 답변을 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밀려왔다.

어쨌든 상황이 모두 종료됐다. 지난 봄 부터 8개월여 동안 열정을 바쳤던 한국어 공부가 앞으로 영원한 추억으로 남을 지, 면접에서 탈락하여 1년을 더 고생을 해야 할 지 불안했지만 당분간은 편하게 쉴 수 있게 된 것이 기뻤다. 평생교육원 동기 넷이서 용산 역사에 있는 커피숍으로 향했다. 그 동안의 스트레스를 날리며 따스한 음료로 마음을 달랬다. 모두가 제대로 답변을 못한 ‘한 문제’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하며,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였다.

11월 16일 면접결과 최종 발표 시까지는 긴장과 초조의 연속이었다. 제대로 답변 못한 마지막 장면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그러면서도 예년의 면접 합격률에 나름 기대를 걸어보기도 했다. 아무렴 80~90%대의 면접 합격률에서 탈락이야 할까? ‘22.89%의 가장 낮은 필기 합격률을 보였던 5회 차 면접(2010년)의 경우엔 93.87%의 면접합격률을 보였었는데···’하며 위안과 기대감도 가져보았다. 최종 발표일은 국립국어원의 ‘2016하반기 국어교육전문과정’ 교육기간(11월 14일~18일) 중에 있는 날인데 한국어교육교사로서의 자질을 더 닦기 위해 미리 교육을 신청해 둔 터였다. 합격이나 불합격의 경우 나는 어떤 모습을 보이게 될까? 별별 상념에 다 빠져들어 가고 있었다.

‘우주의 기운(?)’이 나에게도, ‘최종합격’

돌이켜 보면 올해는 행운의 해였다. ‘인간이 무엇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그 소망이 이루어지도록 도와준다.’ 브라질의 세계적인 작가 파울로 코엘료가 <연금술사>에서 한 말이다.

면접(10월 23일)이 끝나고 최종 발표일(11월 16일)까지 약 24일 동안은 천근만근의 돌덩이가 내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자꾸만 면접 때의 실수가 맴돌았다. 국립국어원의 한국어전문과정 교육 이수를 위해 상경(11월 13일)을 했다가 광화문의 교보문고를 들렀다. 수필창작과 관련한 책들을 살펴보다가 한국어 맞춤법 해설 책자가 눈에 띄어 살펴보니 면접 시 잘못 답변했던 조사와 어미 부분에 대한 해설들이 자세히 나와 있었다. 그냥 책을 덮어버리고 말았다. 더 큰 절망감이 짜르르 가슴을 파고들었다.

지구는 어김없이 돌고 돌았다. 우주의 법칙에 따라 발표 날짜도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11월 16일 새벽 5시. 국립국어원 교육 이수를 위해 머무르고 있는 서울의 화곡동 집. 잠에서 깬 나는 더 이상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혹여 새벽 0시를 기해 발표할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에 컴퓨터를 켰다. 해당 홈페이지를 열어두고 발표만을 기다렸다. 발표예고가 9시로 되어 있어서 컴퓨터로 자동 표출이 되도록 해놨을 것이란 생각은 하면서도 혹여나 하는 심정에 8시 59분까지도 열어보았으나 맹탕. 9시 40분까지는 교육을 가야 하는데 시간이 빠듯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정확히 오전 9시 다시 홈페이지를 들어가 보았다. 드디어 발표가 되었다. 최종합격이었다. 순간의 기쁨이 그동안의 번민을 한꺼번에 씻어버렸다. 5호선을 타고 국립국어원으로 가는 도중 핸드폰에도 합격 통지를 알리는 신호음이 울렸다. 창살 없는 감옥(?)에 자진하여 들어간 지 9개월 만에 맛보는 성취감은 짜릿했다.

교육을 마치고 집(화곡동)에 돌아와 찬찬히 Q-net홈페이지를 보니 면접에도 점수가 있었다. 그 때까지 ‘합격, 불합격’으로만 판정하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올해 필기시험은 합격률(23.25%)은 역대 두 번째로 낮았기 때문에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면접에서는 대부분 합격을 시켜주겠지 하는 기대를 갖고 있었다. 과거 사례를 보면, 필기합격률이 크게 높았던 몇 번의 기회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90%대의 면접 합격률을 보여 온 것이 사실이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필기합격률이 가장 낮았던(22.89%) 지난 5회(2010년) 시험에서의 면접 합격률(93.87%)을 감안하면 이번에도 90%대의 합격률을 기대할만 하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번 면접에서의 합격률은 78.13%에 불과했다. 필기 합격률이 높았던 지난 4회(2009년)와 10회(2015년)차 시험에 이어 이번 세 번째로 낮은 합격률이었다.

2016년도 한국어교육능력 검정시험 필기 합격자는 모두 721명이다. 그런데 면접시험 응시자는 모두 1,006명으로 올해 필기합격자 중 면접을 포기한 수험생을 감안하더라도 최소 285명이 더 불어났다. 이는 지난해 필기합격자들 중 면접시험에 응시하지 않았거나 탈락한 수험생들이 이번에 다시 응시했기 때문이다. 필기를 합격하고 면접에서 탈락할 경우 1회에 한해 이듬해 다시 면접시험을 볼 수가 있다. 결국 올해의 당초 응시자(3,101명) 중 721명이 필기에 합격(23.25%)하고, 여기에다 65명을 더한 786명이 최종 합격을 하였다. 면접 합격률(78.13%)로 환산할 때 올해 필기시험 합격자(721명) 중 563명 정도가 면접시험까지 최종 합격한 것으로 볼 수 있다.(이상의 계측은 단순 환산한 것으로 절대치는 아니며 확인된 사항도 아님) 따라서 2016년도 필기시험 총 응시자 3,101명 중 면접에 563명만이 합격했다고 가정하면, 필기 응시자 중 최종 합격률은 18.15%가 된다. 만만찮은 시험결과이다.

♣ 새로운 길을 향해

미지의 세상을 향해 차돌같이 도전했던 올 한해, 행운의 여신은 저돌적으로 고군분투한 나를 적극 보듬어 주었다. 새로운 여정의 출발이 처음은 고달프고 힘이 들었지만 지금은 가뿐하다. 앞서 말했던 고뇌와 고통의 별은 이제 보니 실제 희망의 별이었던 것이다.

면접결과가 발표되기 하루 전날(11월 15일)에는 인천에 사는 나의 큰 딸이 결혼 4년여 만에 귀한 아들을 낳았다. 외할아버지가 된 것이다. 그리고 다음날, ‘한국어’ 시험 최종합격자 발표가 이루어져 이틀 연속 겹경사를 맞게 되었다.

마침내 2017년 2월 23일, 국립국어원의 심사를 거쳐 2월 3일 발급된 문화체육관광부장관 명의의 한국어교원자격증(3급)을 우편으로 받았다.

올해는 방향전환을 위해 나름 치열한 노력을 기울인 한 해였다. 다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고, 건강이 최우선이라는 점을 실체적으로 깨달은 해이기도 했다. 매사에 고통 없는 결실은 없는 법. 청춘을 다 바쳐 행정공무원으로 일해 왔던 37년간의 공직 생활을 마무리하고, 39년 전 잠시 경험했던 교직시절을 회상하며 이제 새로운 봉사의 여정을 떠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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