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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 피플 <‘보수 재건’의 운명 짊어진 김종인>

작성일 :
2020-06-22
그레타 툰베리

   김종인 위원장은 독일 뮌스터대 경제학 박사 출신으로, 독일식 사회적시장경제 모델을 공부하는 동안 ‘경제민주화’의 틀을 세웠다. 정치적으로는 비례대표(옛 전국구) 5선을 한 ‘백전노장’이다. 4·15 총선에서 통합당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을 맡기 전까지 최근 10년간 이력은 ‘박근혜 경제 민주화 교사 → 더불어민주당 구원투수 → 안철수 멘토’로 요약된다. 그는 초대 대법원장인 고(故) 가인 김병로의 손자로도 유명하다. 전두환 정권 시절 민정당 전국구 의원으로 정계에 발을 디뎠고, 1987년 개정된 헌법에 경제민주화 조항을 넣는 데 일조했다. 6공화국에서 보건사회부 장관 등을 지내며 ‘토지공개념’을 도입했다. 그는 2012년 새누리당(통합당 전신) 국민행복추진위원장 겸 경제민주화추진단장을 맡아 19대 총선과 18대 대선을 승리로 이끌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등을 지고 나선 더불어민주당에 전격 입당, 선대위원장을 맡으며 야권의 분열 속에서도 원내 제1당 등극이라는 성과를 거뒀다. 그가 늘 승리만 일군 것은 아니다. 2017년 대선 국면에서 민주당을 탈당해 안철수 후보를 돕는가 하면 자신이 대권에 도전하겠다고 나섰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2020년 21대 총선에서 통합당의 총괄선대위원장으로서 ‘과반 의석’을 장담했지만 결과는 참패로 끝났다.



   김 위원장은 우여곡절 끝에 4·15 총선을 3주 남기고 제1야당의 ‘구원투수’로 등판했다. 그가 통합당의 ‘총선 간판’을 맡을 수 있다는 얘기는 2020년 2월 말부터 정치권에서 꾸준히 거론돼왔다. 3월 중순까지만 해도 선대위원장 추대가 확실시됐지만 그가 태영호 전 북한공사의 서울 강남갑 공천 문제 등을 지적한 것이 논란이 되면서 유야무야됐다. 그러나 통합당은 ‘불씨’를 꺼뜨리지 않고 물밑에서 영입을 지속적으로 타진해왔다. 선대위 인선이 마무리된 상태에서 황교안 당시 통합당 대표가 박형준 · 신세돈 공동선대위원장과 함께 그의 자택을 직접 찾아 설득한 끝에 뒤늦게 통합당 합류가 성사됐다. 하지만 결과는 통합당의 참패였다. 그럼에도 그는 보수 재건의 선봉에 서게 됐다. 총선 참패로 통합당 지도부가 붕괴된 상태에서 ‘김종인 비대위원장 카드’가 계속해서 제기되는 가운데 당 내에선 총선 패배의 책임을 들어 반발하는 기류도 존재했다. 그러나 폐허나 다름없는 통합당의 사정과 기근에 가까운 인물난으로 그 외에 적임자가 없다는 ‘대안 부재론’에 보수 재건의 책임이 다시 그의 어깨에 지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