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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읽는 전쟁사 <살기 위한 몸부림, 그리고 좌절된 미래 독일농민전쟁(1524~1525)>

작성일 :
2020-06-22
산 살기 위한 몸부림, 그리고 좌절된 미래
독일농민전쟁(1524~1525)
“내 집을 뜯어 먹은 게 너희들이냐?”
“죄송해요, 할머니. 너무 배가 고팠어요. 아버지가 우리를 숲에 버렸거든요.”
두 눈을 희번덕거리며 묻는 마녀에게 소년이 동생을 뒤로 숨긴 채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림 형제의 <헨젤과 그레텔>의 한 장면이다. 그렇게 부모에게 버림받은 아이들은 마녀의 집에서 살며 착취를 당했다. 언제 잡아먹힐지 모르는 채로….

무너진 봉건제도, 권력층에 대한 분노

애초에 부모에게 버림받은 이유는 가난이었다. 자식을 버리지 않을 수 없는 지독한 가난이었다. 영주와 제후의 세속권력과 교회와 수도원의 종교권력이 아닌 농민과 농노(생산계층)들이 모두의 생계는 물론이고 권력층의 사치까지 부담하고 있었다. 하지만 십자군전쟁으로 땅은 황폐해졌고, 흑사병으로 생산계층은 줄어든 상태였다. 결국 견딜 수 없던 자들은 도시로 도망쳤고, 남은 자들은 더욱 가중된 부담으로 허덕였다. 헨젤과 그레텔의 시절이 바로 그랬다.
그런 때에 변화의 불씨가 타올랐다. 1517년 독일 작센의 비텐베르크 교회 문에 95개조 반박문을 내건 마르틴 루터가 지핀 불씨였다.

프랑스대혁명 이전 최대의 민중봉기

루터의 선언에 행동으로 답한 이들이 바로 농민들이었다. 알자스, 작센, 튀링겐에 이어 스위스와 오스트리아까지 농민들이 들불처럼 일어났다. 훗날 카를마르크스가 말한 것처럼 “프랑스대혁명 이전 유럽에서 일어난 가장 주목할 만한 민중봉기”가 일어난 것이다.
그러나 농노 해방, 수도원 해체, 무주택자 거주지 마련 등 공동소유 확대, 십일조 폐지 등을 주장한 농민들의 외침에 1,000년 동안 세상을 지배했던 권력층은 무자비한 진압으로 화답했다. 30만여 명의 농민군 중 10만여 명이 귀족들에게 학살되었다. 1524년 5월 15일, 독일농민전쟁 기간 중 최대 전투인 프랑켄하우젠 전투가 있던 이날 하루만도 농민군6,000명이 목숨을 잃었다. 포병도, 기병도, 군사훈련도, 지휘체계도 없이 농기구만을 든 그들이 정예군사를 당해내기란 애초에 불가능했다. 심지어 루터마저 농민군의 기세에 두려움을 느낀 나머지 농민들에게서 등을 돌려버렸다.

독일농민전쟁은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독일 농민의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고, 반대로 영주들의 권한은 더욱 강화되었다. 이로써 독일은 서유럽 나라들과 달리 르네상스의 길을 걷지 못했고, 새로운 시대로의 전진을 하지 못했다. 또한 이때의 좌절은 프랑스대혁명에 이은 서유럽 혁명의 시기에도 함께할 수 없게 만들었다. 이는 서유럽과 달리 연방군주에 의한 폐쇄적 절대주의를 오랫동안 유지하는, 그래서 경제적으로 낙후되는 이유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