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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읽는 전쟁사 <프랑스대혁명의 불씨를 낳다 100년전쟁(1337~1453)>

작성일 :
2020-03-27
산 프랑스대혁명의 불씨를 낳다
100년전쟁(1337~1453)
오를레앙성. 잉글랜드군의 포위로 성 안 프랑스군의 사기는 바닥으로 떨어진 상태였다. 그런 중에 어린 소녀가 몇 안 되는 병사들을 이끌고 오를레앙성 앞에 나타났다. 잉글랜드군은 어이가 없어서 이들을
비웃었다. 그래서 소녀가 성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내버려두었다. 성 안에 들어가 프랑스군의 식량이나 축내라며 말이다.
하지만 성으로 들어가는 것이 쉽지 않았다. 성 앞을 가로지르는 강에 큰 바람이 불어 배로 건너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그때 소녀가 기도를 올렸다. 잠시 후 거짓말처럼 바람이 멎었고, 그 덕분에 소녀와 병사들은 강을 무사히 건널 수 있었다. 오랜 고립으로 피폐해 있던 프랑스 사람들의 가슴이 뜨거워지는 순간이었다. 그 후 소녀가 이끈 오를레앙성의 프랑스군은 연이어 전투에서 승리했고, 마침내 잉글랜드군으로부터 오를레앙을 해방시켰다. 바로 100년 동안 지진하게 이어졌던 전쟁의 종막을 연 잔 다르크의 등장이었다.

잉글랜드과 프랑스를 통합하라

역사상 전쟁들이 대부분 그렇듯 100년전쟁도 정복욕과 경제적 이권 때문에 시작되었다. 발단은 프랑스 내에 잉글랜드가 영지(플랑드르)를 가지고 있는 것이었고, 잉글랜드왕 에드워드 3세가 프랑스왕 필리프 4세의 외손자라는 것이었으며, 필리프 4세와 그의 아들들이 모두 아들 없이 사망하는 바람에 카페왕조가 문을 닫고 발루아 백작이 왕위를 이어받았다(필리프 6세의 발루아왕조)는 것이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3세가 프랑스를 영국과 통합하겠다는 야심을 품고 왕위계승권을 주장하고 나섰다. 표면적 이유는 자신이 카페왕조 필리프 4세의 후손들 중 유일한 남성이고 가장 연장자라는 것이었다.

결국 전쟁이 터졌다. 전쟁 초기 흑태자 에드워드가 이끄는 잉글랜드군 앞에서 프랑스군은 패하기만 했다. 노르망디를 내주면서 영국해협의 재해권을 잃었고, 크레시전투에서 패하면서 칼레를 잃었다

지나치게 길었던 새 시대로의 터닝포인트

한때 전쟁이 종식될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 잉글랜드의 헨리 5세가 아쟁쿠르전투에서 프랑스군과 싸워 크게 승리한 뒤 샤를 6세의 딸과 결혼하여 프랑스 왕위계승권을 인정받고, 헨리 5세의 아들 헨리 6세가 잉글랜드와 프랑스 두 나라의 왕으로 즉위했을 때였다. 그러나 프랑스가 이에 반발해 샤를 7세를 왕위에 올리면서 전쟁은 또다시 이어졌다.

이런 지리한 싸움 끝에 등장한 이가 잔 다르크였다. 비록 등장 3년 만에 마녀로 지목되어 화형되고 말지만 신의 계시를 받았다는 소녀의 등장은 전세를 역전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두 부류로 갈라져 있던 프랑스 귀족들마저 화해시켰다.
결국 전쟁은 잔 다르크의 등장과 희생, 그리고 프랑스 왕실의 화합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반면 잉글랜드는 왕위를 둘러싼 귀족 간의 내란(장미전쟁)이 일어나 전쟁에 대응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고, 군은 마침내 점령지를 모두 빼앗긴 채 빈손으로 귀국하고 말았다. 그러나 전쟁은 116년이나 이어졌고, 그 탓에 프랑스 전역은 전쟁터가 되었다. 농토는 황폐해졌고, 봉건 기사세력은 무너졌다. 농노들도 많이 희생되었다. 중세 봉건사회의 근간이 모두 사라져버린 것이다. 이는 절대왕정이 서는 바탕이 되었다. 또 농노해방의 길이 열리는 계기가 되었으며, 부르주아계급인 시민이 등장하게 만들었다. 긴 전쟁 끝에, 과거의 주검 위에 프랑스대혁명의 불씨가 피어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