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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읽는 전쟁사<포에니전쟁(기원전264~146)>

작성일 :
2020-01-29
산 로마, 제국의 길을 걷다
포에니전쟁(기원전264~146)
시칠리아 자마, 육지에서 가장 큰 동물 140마리가 배를 타고 이제 막 도착한 이들을 향해 무시무시하고 육중한 발을 높이 쳐들었다. 얼굴에 그림자가 생기는가 싶었는데, 한순간에 더할 수 없는 공포가 어린다.

살려달라는 애원이나 단말마의 비명도 지를 수 없다. 그전에 모든 빛이 사라졌으니까. 지진이라도 난것마냥 땅이 뒤흔들리면서 사방은 아비귀환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살아남은 자들은 장수의 명령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짐승에게 창을 투여했다. 공격을 받은 짐승은 통제를 벗어나 마구 날뛰기시작했다. 이제 적과 아군의 구분이 없어졌다. 오히려 가까이에 있던아군들이 더 많이 짓밟혀졌다. 코끼리만 믿었던 카르타고군이 로마군에 의해 패배하는 순간이자 제2차 포에니전쟁에서의 승기가 로마로 넘어가는 순간이었다.포에니전쟁은 북아프리카의 카르타고와 로마가 지중해 패권의 교두보라 할 수 있는 시칠리아를 차지하기 위해 벌인 전쟁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기존의 패권국 카르타고로부터 시칠리아를 빼앗기 위해 신흥 강대국 로마가 벌인 전쟁이라는 게 더 맞겠다. 기원전 264년에시작해 3차까지 무려 120년간 지속되었다.

시칠리아를 정복하는 자가 지중해를 얻는다

카르타고는 기원전 814년 페니키아인들이 아프리카 북쪽 해안 튀니스 교외에 건설한 고대국가로서강력한 해군력과 상업을 기반으로 이베리아반도 남쪽부터 북아프리카 이집트 지역까지를 장악한 강대국이었다. 그리고 시칠리아섬은 그리스 지배를 받는메시나와 독립왕국 시라쿠사, 그리고 카르타고가 나눠 지배하고 있었다.이런 때에 시칠리아를 유랑하던로마 출신 용병이 메시나에서 약탈을 하자 시라쿠사가 이웃국가로서 메시나를 돕기 위해 출병에 나섰고, 용병들은 고국인 로마에 원병을 요청했다. 신흥국으로서 지중해 서쪽으로 진출하고자 했던 로마에게는 기회로, 힘을 키우는 로마를 견제했던 카르타고에게는 시칠리아를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위기로작용했다.이렇게 시작된 제1차 포에니전쟁은 카르타고의승리로 금방 끝날 줄 알았다. 그러나 최종 승리는 로마에게 돌아갔다.
이탈리아반도를 통일하고 군제를 재편한 로마는 이미 애송이가 아니었던 것이다. 전쟁이 20여 년 동안 이어지면서 코끼리도 더는 무섭지 않았고, 새로운 무기도 개발한 덕분이기도 했다. 결국 로마는 시칠리아를 로마 최초의 해외 속주, 바로 프로빈키아로 삼아버렸다. 코르시카도 사르데니도 모두 로마에 편입되었다.

지중해의 지배자가 바뀌다

20여 년 뒤 1차 전쟁을 이끌었던 하밀카르 바르카스의 아들 한니발이 이베리아반도 내 로마의 점령지사군툼을 점령해버렸다. 그리고 지중해가 시칠리아는 물론이고 코르시카와 사르데니까지 장악한 로마 의 영향하에 있었기 때문에 육로를 통해 로마로 향했다. 코끼리부대를 이끌고 피레네산맥과 알프스산맥을 넘었고, 뛰어난 전술로 이탈리아반도를 전쟁터로 만들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승리의 여신은 카르타고의 편이 아니었다. 이탈리아 남부 자마에서 맞닥뜨린 스키피오의 로마군이 한니발의 카르타고군을 무너뜨린 것이다.

이후 카르타고 시민들은 전쟁피해를 복구하고 경제적으로 재도약하기 위해 노력하고 성과를 보이기시작했다. 그러자 로마가 카르타고를 완전히 무너뜨리기로 했다. 결국 카르타고는 로마군에 의해 3차 전쟁 발발 3년 만에 완전히 파괴되었고, 역사에서사라졌다. 근 500년 동안의 지중해 지배자의 지위가 카르타고에서 로마로 완전히넘어간 것이다. 그리고동쪽에 이어 서쪽으로 세력을 확장하고자 했던 로마의 음험한 욕망을 현실로 이루기 위한 첫 단추가 채워진것이다.